김지은, '김지은입니다 -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봄알람)
이 책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수행비서였고 성폭력 피해자이자 미투를 한 저자의 진솔한 기록이다. 책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진짜 현실들을 볼 수 있었다. 읽으면서 피해자에게 주어진 가혹한 현실에 불편부당함, 불쾌감을 느끼고 몇 번이고 책을 덮었다. 한 장 한 장이 모두 충격적이었던 책이다.
성폭력 피해사실을 밝히고 재판을 치른 사람의 시각에서 쓴 책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었다. 서럽고 아프고 처량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고 성폭행을 당했을 때와 2차가해를 당할 때의 그 무력감은 간접적으로 겪어도 정말 무겁게 느껴졌다. 554일이 긴 시간이고, 가짜뉴스와 위증이 난무하고 끝은 보이지 않는 지루한 재판을 진행하는 피해자 당사자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나 또한 예전에 뉴스에서 위증들로 자극적인 기사들을 내보낸 것을 보고, 같은 여자로서 스스로 진실을 알려 하지 않고 그 기사들을 보고 '김지은이란 사람이 저런 사람이었나'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별로 관심이 없었다. 부끄럽지만 미투가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다.(지금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읽어보니, 그저 나와 똑같은 대한민국의 여성 노동자일 뿐이었다. 정치권에 발 담그지 않아 정치권에서 도지사의 위력을 체험해보진 않았으나 이 책에서 간접적으로 그 무시무시한 위력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나도 미투는커녕 김지은을 도와 탄원서를 써 준 동료들처럼 했을지도 미지수다. 했을지라도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며 해야 했겠지.
이 책을 읽으며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2차 가해'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보통 성폭행 관련하면 피해자와 피의자와의 관계만 생각하는데,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사회, 피해자의 처신을 문제삼는 행동, 피해자의 평소 품행을 문제삼는 행동, 피해자의 개인정보나 카톡내용을 유포하는 행위, 피해자를 피의자와 대면시키는 행동, 주변의 묘하게 이상한 반응 등 모두가 끔찍한 2차 가해들이었다. 피해자는 웃으면 안되고 무채색 옷만 입어야 하고 친구들과 카페에 가는 것조차 수군거림의 대상이 된다는 게 너무나 끔찍했다. 내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구나. 책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을 간접적으로 겪었다. 피해자의 곁에 있던 것도 아니고 활자를 읽었을 뿐인데도 너무 힘들어서 책을 몇 번이고 덮었다.
안희정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이 책에 쓰여진 재판과정 554일 동안 그녀가 겪었던 고통과 피해는 참담했다. 유죄판결만으로는 보상받을 수 없을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일상이 예전과는 180도 달라지고 힘들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저자 김지은은 전 충남도지사였던 안희정을 상대로 JTBC뉴스룸에 출연해서 얼굴을 다 밝혔고 언론사에서 연일 보도했던 큰 화젯거리였기때문에 더 심하게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피해자가 직접 쓴 글들을 보면서 계속 눈물을 참아야 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나가더라도 마스크를 쓰고, 예쁜 옷도 입지 못하고 항상 무채색의 옷만 입었다고 한다. 재판에 영향이라도 갈까봐 극도로 자기검열을 하고 '피해자다운' 행동이나 옷차림만 할 수 있었다.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봐 숨이 막혔다고 한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장도 함부로 갈 수 없었다. 축하해주고 웃는 모습이라도 보여서 재판에 지장이라도 갈까봐. 같은 사람으로서 정말 마음이 아팠다. 일상을 빼앗겨버린 느낌이었다.
대법원의 최종유죄판결로 끝이 난 지금도 정치권에서 몸담았던 커리어들을 이어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많은 이들이 힘이 되주었다. 나도 작게나마 힘이 되고 싶다.
나에게 성폭력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다. 하지만 성폭력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로 외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도울수 있는 한 끝까지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지은님에게 용기내주어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김지은님은 재판 과정을 겪고 마땅히 받아내야 할 안희정 유죄판결을 받아냈지만, 다른 피해자들에게 미투를 권할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만큼 그 과정이 힘들고 지쳐서 몸과 마음이 부서지는 경험이라는 것이다.
"성폭력을 당하고 가장 힘들었던 현실은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함께해주겠다는 그저 단 한마디의 '동의'면 됐다. 힘겹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네 말이 맞다. 도와줄게"라는 말이 필요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한마디를 듣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 범행을 당한 뒤 참지 못하고 상담한 선배가 마침내 "도와줄게"라고 했을 때, 그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피해자 옆에 또래 친구들이 있다는 게 굉장히 특이한 현상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보아온 피해자는 항상 혼자였다고 했다."
김지은님에게 '잘하셨다, 고생했다'라고 말하는 게 김지은 한 사람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지금도 혼자일 피해자들, 내 친구들 내 동료들 내 후배들 내 주위사람 모두를 위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결정을 지지하고 동의하고, 만약에 어떤 피해자가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면 힘 닿는 데까지 도와줄 것이다. 그것이 내 삶을 바꿔놓을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김지은님을 지지한다고 말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