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택,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서가명강)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 독재부터 촛불까지, 대한민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강원택 지음

유성호 교수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이후 두 번째로 읽은 서가명강 시리즈다. '서울대에 가지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라는 타이틀이라서 그런지, 서가명강 시리즈를 읽으면 다른 교양서들과는 좀 다르게 교수님이 직접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책은 한국 정치사를 각각 대통령제, 선거제도, 정당,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시간순으로 설명한다.
해방 이후 제1공화국부터 현재까지를 설명하는데, 수많은 사건들 중에서 의미있는 사건들을 설명해준다. 이승만 정권의 수립과 하야부터 분열됐던 거대 정당들의 역사, 군사 쿠데타들, 헌법 개정, 여러번의 민주화운동, 지역주의 등 굵직한 사건들은 물론이고 한국정치사의 흐름을 꽤 세세하게 설명한다. 설명하는 것이 워낙 방대하고, 예전 자유당시절 등은 내게 생소한 시대라서 읽기가 조금 힘들었지만, 한국정치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끝까지 읽기를 추천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와닿는 게 많아지는 책이다. 한국정치만의 고유한 특성들(대통령제나 선거제도 등)을 이해하기엔 최고로 안성맞춤인 책이다.
그저 있었던 역사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 정치제도에 대한 분석도 있다.
"지역주의 정치가 사라지지 않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선거제도 역시 지역주의 정치의 지속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 현재 우리나라의 선거제도는 지역구에서는 단순다수제가 사용되고 있으며, 이와 함께 정당 투표를 통한 비례대표제 방식도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을 다수제 혼합형 선거제도라고 한다.
그렇지만 전체 의석 가운데 비례대표의 비율이 워낙 낮기 때문에 실제로는 단순다수제 선거제도의 효과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 경쟁 구도에 따라서는, 절반보다 훨씬 적은 득표로도 당선이 가능하다.(...) 더욱 큰 문제는 지역적으로 밀집된 지지를 확보한 정당에게 단순다수제가 더욱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단순다수제 선거제도가 지역주의 정당에게 제도적인 유리함을 준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 행태, 제도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여러가지 엿볼 수 있는데, 그중에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것에 대해 저자의 의견에 꽤 공감했다.
그러나 사실 국회의원 수가 적을수록 그 자리는 더욱더 권위적으로 될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역으로 국회의원 수가 크게 늘어난다면, 예컨대 1000명이라면 누구든 지금보다 쉽게 맡을 수 있는 자리가 된다. 수가 늘어나면 국회의원의 권위적 모습은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 국회의원 수가 늘어난다면 이와 같은 업무 영역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임위원회의 기능을 세분화할 수 있어서 국회의 행정부 감시, 감독도 더 철저해질 수 있을 것이다. 국가 예산이 500조원에 달한다. 국회의원을 늘려서 잘못 사용되거나 방만하게 지출된 예산을 1퍼센트만 찾아낼 수 있어도 그 금액이 5조 원이다. 국회의원 몇 명 늘리는 비용이 문제가 되지 않는 금액이다.
물론 저자는 지역구 의석이 아닌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는 것을 말하고, 비례대표 공천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고 민주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한다.
또 강원택 교수는 시민사회와 국가를 연계해주는 정당의 역할을 강조한다. 거리 시위나 집회 등 직접민주주의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정당정치의 기능 회복을 통해 정당이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합의란 절대 만장일치일 수 없다. 이 복잡한 사회가 같은 생각을 갖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합의는 여러 가지 형태의 토론과 협의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모두의 뜻이 합치되었다 하더라도 토론과 양보와 타협을 통해 이뤄진 다원적 만장일치의 형태다.
정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그러한 능력이나 덕성에 대해서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그사람의 '이미지'에 의해 어느 날 갑자기 유력한 리더로 떠오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 이처럼 전문적인 역량을 가져야 하는 정치에서 경험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참신함으로 평가받는 것은 옳지 않다.
무엇보다 '제도의 정치'가 제 역할을 해서 '거리의 정치'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시민의 정치 참여는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거리의 정치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당과 의회와 같은 제도의 정치만이 사회적 갈등과 이해관계의 충돌을 해결해낼 수 있다.
나는 기존 정당들에 대한 시민들의 부정적 인식은 시민들의 탓이 아니고, 현재 한국의 정당인들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글로써 정리하긴 쉽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을 읽어보면 한국 정치에 대해 전반적으로 지식이 쌓이고,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정치에 관심있는, 관심 가져야하는 시민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