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 제르맹 장편소설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다니는 여자'
장편소설이라 하기엔 조금 짧은 듯한 이 소설은, 프라하 거리에 잠깐씩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어떤 여인에 관해서 쓴 이야기다. 이 여인은 짧은 시간 동안만 가시적으로 보인다. 이 여인은 이름도 나이도 얼굴고 없다. 몸집이 거대하고, 두 다리의 길이가 달라서 절뚝거리며 걷고, 비참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의 눈물로 이루어져 있다. 기차, 사람들, 벽 등 모든 것들은 그녀의 몸을 통과할 수 있다.
"그 여자에게는 자신만의 고유한 얼굴이 있는 게 아니라는, 심지어 그녀는 유일무이한 인격체나 개인이 아니라는ㅡ그녀는 복수의 존재라는 직관이 그것이었다. 그녀의 몸은 다른 몸들로부터 나오는 무수한 숨결, 눈물 속삭임들이 합류하는 장소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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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그 도시 전체, 도시와 변두리, 그리고 그 너머였던 것이다. 그것은 땅덩어리 전체, 산 자와 죽은 자들이었다.
걸음걸이가 보기 흉하고 어깨가 떡 벌어진 그 여자는 살과 피가 아니라 눈물로, 오직 눈물만으로 된 존재였다. 그녀는 한 여자에게서가 아니라 모든 남자 모든 여자의 고통에서 태어났다."
이 여인은 잠깐동안만 보였다가 보이지 않곤 하는데, 이 소설은 그 여인이 잠시동안 프라하 거리에 나타난 아홉가지 순간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 거인 여인이 연민하고 애정하고 가엾어하는 것들에 대해 묘사한다.
그래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이야기'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다. 화자도 누구인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읽어본 적 없는 특이한 소설이었다.
꿈을 꾸는 것 같은 소설이다. 모든 이들의 슬픔을 간직한 비가시적인 이 여인이 잠깐 책 속에 들어왔다 간 기분이다. 아니, 책이 꿈꾼 것 같다.
실비 제르맹의 소설을 2개 더 읽어봤는데, 작가의 문체는 역시나 환상적이다. 실재와 비실재의 경계를 넘나든다. 요새 이런 종류의 문학을 '환상문학'이라고 한다나?
같은 작가의 장편소설 '분노의 날들'과 '숨겨진 삶'은 정말 정말 좋아했는데, 이 책은 사실 조금 실망했다. 사건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그냥 계속 '여인'에 대한 묘사만 나오기 때문인지 흥미도가 조금 떨어졌다. 분노의 날들을 첫 번째로 읽고, 숨겨진 삶을 두 번째로 읽었을 때 이 작가님의 소설은 믿고 읽겠다 싶었는데 이번 소설은 실망감이 크다. 하지만 시간순으로 본다면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가 제일 처음 쓰인 소설이니까, 점점 이 작가님의 소설이 재밌어진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작가의 3권의 책을 읽었는데 실비 제르맹의 문장들은 감탄만 나온다. 번역한 분에 대해서 존경심도 생긴다.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문학적이라서 그것을 번역하기엔 정말 어려웠을 것 같다. 그래도 번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실비 제르맹 소설 읽고 독후감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