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오테사 모시페그, '내 휴식과 이완의 해'(문학동네)

love_ms 2020. 4. 28. 19:57

오랜만에 읽는 영미권 장편소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난 인생에서 힘든 일을 '겪어 내지' 못하고, 흐르는 시간이 그것을 치유해주었다.

그래서 소설의 주인공(지금 발견했는데, 이 긴 장편소설 내내 주인공 화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이 약물 복용으로 잠에 취해서 자신의 아픔을 잊으려는 발상이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다. 몸에는 엄청 안 좋을 것 같지만, 때론 마음이 너무 아플 때는 몸이 아픈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외동인 자신을 다른 부모들처럼 사랑을 주지 않았고, 어쩌면 남보다 더 친하지 않았던 부모가 차례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친구는 자신을 여자친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처참할 정도로 주인공을 존중하지 않았고 그에게 아무리 매달려보아도 그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주인공은 과거를 잊거나 극복하기 위해서 잠을 선택한다. 불면증이라고 속인 뒤 정신과 의사인 닥터 터틀에게 잠이 드는 약을 받아오는 방법으로, 깨어있지 않고 계속 잠에 들 수 있었다.

 

주인공을 종종 잠으로부터 삶으로 끌어내는 것은 바로 친구인 '리바'다. 주인공은 리바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정신이 피폐해진 상황에서도 리바를 누구보다도 존중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주인공이 자신은 느끼지 못했지만 리바를 꽤나 좋아했다고 믿는다. 6개월 간 끝없는 잠에서 깬 뒤 삶을 되찾았다고 느꼈을 때, 리바에게 전화를 걸었기 때문이다. 그 6개월 간 연락 하나 없는 리바는 주인공에게 대딘히 실망하고, 이제 친구의 연을 끊은 것 같지만.

그리고 주인공은 아마도 9.11테러 때 쌍둥이빌딩에서 일하던 리바를 기억하려, 뉴스를 녹화하고, 삶의 어려운 단계를 지날 때마다 리바를 떠올린다. 리바처럼 보이는 여자가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오래도록 생각한다.

 

리바는 우리 인생에서 누군가를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

내가 원할 때 오진 않았지만 나를 삶으로 이끌어주었고, 내가 뜻하지 않게 상처를 주어서 떠나가 버린 사람 혹은 상황같다. 곁에 있을 땐 싫어한다고 끊어내고 싶다고 느꼈지만 떠난 후 삶이 안정되고, 생각해보면 빈자리를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

 

<내 휴식과 이완의 해>

기대했던 내용의 소설은 아니었지만, (표지나 제목만 보고 이 내용을 예상하기 쉽진 않다)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심연에서 빠져나오는 이야기.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