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경, '탈토르셋: 도래한 상상'(한겨레출판)


나에게 2020년 올해의 책이라고 감히 (4월인 지금부터) 말하고 싶다. 이 책이 출간된 건 2019년 8월이라고 나왔는데 아무튼 나한텐 2020년 올해의 책이다.
내가 지금껏 읽은 책 중에 내가 평생 살아온 삶에 가장 밀접한 주제이다. 꽤 두꺼워서 시간이 좀 걸리겠다고 생각했는데 단숨에 읽었다. 단숨에 읽었지만, 내용은 절대로 가벼운 책은 아니다. 여성의 삶에 관해서 내가 직간접적으로 겪어 공감하며 분개하는 부분도 있었고, 내가 행동하지 못해서 죄책감을 느끼고 답답함을 느끼는 부분도 있었다. 책을 읽으며 여러 여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자의 의견을 읽으면서, 동시에 나 자신의 경험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매 순간 느껴왔지만,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던 여성의 꾸밈 강박에 대해 자세히 풀어낸 책이다.
각자 비슷하고 조금씩 다르게 사회의 외모 강박을 겪고 있다. 나의 경우, 화장은 '기본으로' 하고 제일 신경 많이 쓰는 것은 '옷'이다.
비슷한 옷을 모조리 사는 나. 내게 어울리는 색깔은 아이보리, 베이지 계열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그 계열의 모든 옷을 사들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왜 이렇게 많은 옷이 필요한가 의문을 품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살면서 평생 안 하던 생각이다. 왜 내가 얼마 입지도 않는 옷들을 한 번에 10만 원씩 턱턱 사면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 돈이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있지?
내 어렸을 적을 생각하면, 내게 '몸'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그때부터 남들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을 매일 매순간 신경썼던 것 같다. 내 외모에 신경쓰지 않는 때는 학교에 나가지 않는 방학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내 세대 때는, 미성년자는 화장하면 안된다는 분위기 때문에 20년 동안 화장을 하지 않은 맨얼굴로 살아왔고, 화장이라는 꾸밈 노동은 20살 끝자락부터 시작했다.
이 책은 나를 돌아보게 하면서 동시에 미래세대 여성들을 생각하게 한다.
지금까지 나만 신경 썼다면, 이 책을 읽고서는 미래세대 여성들(지금은 유아동, 청소년기의 여성), 상당히 포괄적으로 여성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 세대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화장을 시작하고,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화장을 필수로 해야 하는 여자아이들. 외모 강박은 이전보다 훨씬 심해졌다.
탈코르셋 운동은 절대로 편한 게 아니라는 사실. 나도 선뜻 다가가지 못하겠다. 아직은 내가 구독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유튜버들이 아니고서야, 내 주위에 탈코르셋을 한 여성들이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사회의 보통 인식대로 그대로 산다면, 나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가 피해를 볼 거라는 사실. 이 책을 읽고 절절히 와닿았다.
내가 외모가 아니라 내 몸의 건강을 중요시했던 게 언제적 일일까. 내 몸에 대해서 어떤 평가도 하지 않고, 기능만을 중시하기로 했다. 가볍게 운동을 하고 있지만, 이제부터는 조금 더 강도를 높여서 신체 기능을 강화할 목적으로 운동을 하려고 한다.
마음 한편엔 안도감과, 또 한편엔 미래세대 여성들에 대한 걱정을 안고 책을 덮었다.
"마스크로 가린 기본 상태의 얼굴은 드러내기에 부끄러운 것, 결점인 것, 실패한 것이 된다.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데 감시자의 시선이 와닿는다. 여성에게 수치의 감각을 씌우던 기준이 꾸밈 유무로 옮겨간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한 번도 자신의 몸을 중심에서 치워본 적이 없고 기능을 포기해본 적도 없다는 면에서 남성은 실제로 탈코르셋을 통해 온전한 몸이라는 미지의 상태에 다다르고자 하는 여성의 탁월한 모범이다. ... 태어나 단 한 번도 성별을 이유로 몸의 경계를 무너뜨리거나 불필요한 인내를 요구받거나 고통을 감수하거나 선망하도록 길러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꾸밈도 실력'이라는 흔한 연설은 애초에 실력 경쟁에 포함되지 않았던 종목을 여성에 한해 스리슬쩍 추가시킨다. ... 신체 기능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드는 식습관은 당연하게도 여성을 짜증 나게 하고, 기력 없게 하고, 우울하게 하고, 죄책감 들게 한다."